피렌체 구시가는 걸어서 끝에서 끝까지 30분이면 닿습니다. 지하철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대신, 볼 것이 너무 촘촘해서 계획 없이 걸으면 같은 광장을 하루에 세 번 지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구시가를 일곱 구역으로 잘라, 한 번에 반나절씩 끊어 걸을 수 있는 코스로 정리했습니다. 코스마다 실제 걷는 거리와 각 지점의 관람 시간을 따로 계산해 두었으니, 남은 시간에 맞는 것부터 고르시면 됩니다.
코스 한눈에 비교하기
| 코스 | 지역 | 거리 | 소요 | 성격 |
|---|---|---|---|---|
| 두오모, 거푸집 없이 올린 세계 최대 벽돌 돔 | 두오모 광장 일대 | 0.6km | 약 3.5시간 | 필수 · 첫 피렌체 · 건축 · 종교 · 전망 |
| 시뇨리아 광장, 표를 사지 않고 보는 조각 전시장 | 시뇨리아 광장·우피치 | 1.0km | 약 4.5시간 | 필수 · 첫 피렌체 · 역사 · 예술 · 사진 |
| 산타 크로체, 단테의 무덤만 비어 있는 성당 | 산타 크로체 구역 | 1.6km | 약 5시간 | 역사 · 예술 · 골목 · 종교 |
| 산 로렌초, 500년째 벽돌로 남은 미켈란젤로의 정면 | 산 로렌초·메르카토 구역 | 0.9km | 약 4.5시간 | 역사 · 예술 · 건축 · 종교 |
| 원본을 보는 날, 광장의 조각은 전부 복제다 | 두오모 북쪽·산 마르코 구역 | 0.8km | 약 5.5시간 | 필수 · 미술관 · 예술 · 조각 |
| 산타 마리아 노벨라, 벽에 깊이가 생긴 최초의 그림 | 산타 마리아 노벨라·토르나부오니 | 1.1km | 약 3.5시간 | 건축 · 예술 · 쇼핑 · 패션 · 사진 |
| 올트라르노, 1층에서 아직 손으로 만드는 동네 | 올트라르노 (아르노강 남쪽) | 1.3km | 약 3.5시간 | 로컬 · 골목 · 미식 · 휴식 · 건축 |
1. 두오모, 거푸집 없이 올린 세계 최대 벽돌 돔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나무 거푸집 없이 벽돌을 갈지자로 엮어 올린 것이고, 지금도 벽돌 돔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큽니다. 이 코스는 그 돔과 11세기 세례당, 조토가 설계를 시작한 85m 종탑이 한 광장에 모여 있어 이동 거리가 500m도 안 됩니다. 대신 세 곳 모두 안에 들어가면 반나절이 그대로 갑니다. 길에서 발견된 아이를 사흘 동안 데려다 두고 부모나 새 양부모를 기다리게 하던 1358년의 작은 로지아, 단테가 세례를 받은 세례당, 기베르티가 27년에 걸쳐 만든 <천국의 문>이 차례로 나옵니다. 돔에 오르면 정작 돔이 안 보이므로 사진이 목적이라면 종탑 414계단 쪽인데, 오를지 말지를 먼저 정하고 출발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대주교궁과 산 조반니 광장에서 출발해 종탑 옆 골목에서 끝납니다. 0.6km · 지점 6곳 · 약 3.5시간 · 보통. 두오모, 거푸집 없이 올린 세계 최대 벽돌 돔 자세히 보기
2. 시뇨리아 광장, 표를 사지 않고 보는 조각 전시장
로지아 데이 란치는 지붕만 있고 벽이 없습니다. 그래서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잠볼로냐의 <사비니 여인의 납치>를 표를 사지 않고 코앞에서 봅니다. 그 앞 시뇨리아 광장은 600년 동안 피렌체의 정치가 벌어진 자리이고, 바닥 한가운데 둥근 표석은 1498년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지점이라 해마다 5월이면 그 위에 꽃이 놓입니다. 지금도 시청으로 쓰는 베키오궁, 1993년 마피아의 차량 폭탄으로 무너진 자리를 부서진 채 남겨 둔 우피치 서쪽, 코를 문지르면 다시 온다는 멧돼지 청동상을 지나 베키오 다리에서 끝납니다. 1944년 독일군이 피렌체의 다리를 끊을 때 유일하게 남긴 다리이고, 1593년까지는 정육점 거리였습니다. 우피치 미술관은 이 코스에 끼워 넣지 말고 예약 시각을 따로 잡으시는 편이 낫습니다.
비아 데이 체르키에서 출발해 베키오 다리에서 끝납니다. 1.0km · 지점 9곳 · 약 4.5시간 · 쉬움. 시뇨리아 광장, 표를 사지 않고 보는 조각 전시장 자세히 보기
3. 산타 크로체, 단테의 무덤만 비어 있는 성당
산타 크로체는 프란치스코회 성당인데 안은 사실상 피렌체의 판테온입니다.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오, 마키아벨리가 묻혀 있고 단테의 무덤만 비어 있습니다. 라벤나에서 죽은 그의 시신을 끝내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코스는 관광객이 몰리는 두오모·시뇨리아 축에서 한 블록만 동쪽으로 빠져 시작합니다. 단테를 추방시킨 집안의 탑집, 대리석 값을 아끼려 회칠을 긁어내 무늬를 낸 저택, 열다섯 명의 흉상이 붙어 '얼굴의 집'이라 불리는 건물을 지나 미켈란젤로가 사 두고 정작 살지는 않은 집에 닿습니다. 마지막 바르젤로는 옛 감옥이 조각 미술관이 된 곳으로, 1401년 세례당 문 공모전에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냈던 응모작 두 점이 나란히 걸려 누가 왜 이겼는지를 직접 비교할 수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내부 관람이라 오전에 시작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도나티 탑에서 출발해 바르젤로 미술관에서 끝납니다. 1.6km · 지점 7곳 · 약 5시간 · 쉬움. 산타 크로체, 단테의 무덤만 비어 있는 성당 자세히 보기
4. 산 로렌초, 500년째 벽돌로 남은 미켈란젤로의 정면
산 로렌초 성당의 정면은 500년 넘게 벽돌 그대로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까지 마쳤지만 교황이 예산을 다른 데로 돌려 착공하지 못했고, 지금도 그 상태로 광장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 코스는 메디치 가문이 살던 집과 다니던 성당, 묻힌 예배당, 만든 도서관이 반경 300m 안에 모여 있어 이동 거리가 1km도 안 됩니다. 코시모는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안이 너무 화려하다며 물렸는데, 은행가가 군주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도서관은 좁은 현관을 계단이 흘러내리듯 가득 채우고, 그 문을 지나면 낮고 긴 열람실이 나옵니다. 답답한 방에서 밝은 방으로 넘어가게 만든 이 대비가 매너리즘 건축의 시작으로 불립니다. 네 곳 모두 내부 관람이라 시간은 반나절 넘게 잡아야 합니다.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에서 출발해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서 끝납니다. 0.9km · 지점 7곳 · 약 4.5시간 · 쉬움. 산 로렌초, 500년째 벽돌로 남은 미켈란젤로의 정면 자세히 보기
5. 원본을 보는 날, 광장의 조각은 전부 복제다
피렌체 야외에 서 있는 유명한 조각은 거의 전부 복제입니다. 세례당의 청동문도,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도 그렇습니다. 이 코스는 그 원본들이 옮겨 간 두 곳을 하루에 몰아서 보는 구성입니다.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는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 원본 열 판과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미켈란젤로가 죽기 전까지 손대다 부순 <반디니 피에타>가 있고, 1층에는 헐려 사라진 대성당의 옛 정면을 실물 크기로 복원해 두었습니다. 아카데미아의 다비드는 다른 조각가가 망쳐 놓고 버린 대리석 하나로 스물아홉 살의 미켈란젤로가 만든 5m 넘는 상이고, 그리로 가는 복도의 미완성 <노예> 네 점은 돌에서 인물이 빠져나오다 만 상태로 굳어 있어 완성작보다 조각 과정을 더 잘 보여 줍니다. 걷는 거리는 1km 남짓인데 관람만 네 시간이 넘으니, 하루의 대부분을 쓰는 코스로 잡으세요.
미제리코르디아에서 출발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끝납니다. 0.8km · 지점 5곳 · 약 5.5시간 · 쉬움. 원본을 보는 날, 광장의 조각은 전부 복제다 자세히 보기
6. 산타 마리아 노벨라, 벽에 깊이가 생긴 최초의 그림
마사초가 1427년에 그린 <성삼위일체>는 평평한 벽에 깊이가 있는 방을 그려 넣은 최초의 그림으로 꼽힙니다. 그림 아래 해골 위에는 '나도 한때 너희 같았다'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그 성당이 기차역 바로 앞에 있어서, 이 코스는 피렌체에 도착한 날 오후에 쓰기 좋습니다. 마차 경주의 반환점이던 청동 거북 위 오벨리스크, 로마 카라칼라 욕장에서 옮겨 와 세운 화강암 기둥, 메디치 궁보다 크게 지으라는 지시로 시작됐지만 주인이 착공 2년 뒤 죽은 저택을 지나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끝납니다. 그 광장은 중세 시장과 유대인 게토를 헐어 만든 자리라, 개선문에 새겨진 자축 문구를 두고 논란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내부 관람이 성당 한 곳뿐이라 짐을 맡기고 가볍게 걷기 좋습니다.
우니타 이탈리아나 광장에서 출발해 레푸블리카 광장에서 끝납니다. 1.1km · 지점 8곳 · 약 3.5시간 · 쉬움. 산타 마리아 노벨라, 벽에 깊이가 생긴 최초의 그림 자세히 보기
7. 올트라르노, 1층에서 아직 손으로 만드는 동네
베키오 다리만 건너면 사람 밀도가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1층이 대부분 목공·금박·가죽 공방이라 걷다 보면 작업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산토 스피리토 성당은 브루넬레스키가 마지막으로 설계한 건물인데 정면이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이라 밖에서 보면 성당인지도 모르고 지나치고, 안에는 미켈란젤로가 열일곱 살 무렵 시신을 해부해 가며 조각한 나무 십자가가 있습니다. 1608년에 만든 조가비 모양 벽면 분수는 지금도 물이 나오고, 화가 필리포 리피가 태어난 폭 2m짜리 골목은 관광 동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습니다. 광장은 저녁이 되어야 제 모습이 나오고, 둘러싼 식당도 관광지 가격이 아닙니다. 피티 궁전에서 끝나므로 보볼리 정원까지 갈지 여부로 코스 길이가 달라집니다.
보르고 산 야코포에서 출발해 피티 궁전에서 끝납니다. 1.3km · 지점 6곳 · 약 3.5시간 · 쉬움. 올트라르노, 1층에서 아직 손으로 만드는 동네 자세히 보기
하루 일정으로 묶는 방법
오전 한 코스, 오후 한 코스가 기본 단위입니다. 아래는 이동이 가장 적게 나오는 조합입니다.
| 일차 | 오전 | 오후 | 이유 |
|---|---|---|---|
| 피렌체 첫날 | 두오모, 거푸집 없이 올린 세계 최대 벽돌 돔 (약 3.5시간) | 시뇨리아 광장, 표를 사지 않고 보는 조각 전시장 (약 4.5시간) | 두오모 광장에서 시뇨리아 광장까지는 도보 5분입니다. 다만 오전 코스에서 종탑을 오르면 오후에 다리가 남지 않으니, 종탑을 택한 날은 오후 코스에서 베키오궁 내부를 빼고 광장과 다리만 걸으세요. |
| 피렌체 둘째날 | 원본을 보는 날, 광장의 조각은 전부 복제다 (약 5.5시간) | 산 로렌초, 500년째 벽돌로 남은 미켈란젤로의 정면 (약 4.5시간) | 아카데미아 출구에서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까지 도보 7분입니다. 오전이 미술관 두 곳이라 그것만으로 하루의 대부분이 차므로, 오후는 산 로렌초 성당과 메디치 예배당 두 곳만 남기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
| 피렌체 셋째날 | 산타 마리아 노벨라, 벽에 깊이가 생긴 최초의 그림 (약 3.5시간) | 올트라르노, 1층에서 아직 손으로 만드는 동네 (약 3.5시간) | 오전 코스의 정의의 기둥에서 산타 트리니타 다리만 건너면 오후 코스가 시작됩니다. 올트라르노 공방이 오후 3시 30분에 다시 문을 여니 순서를 바꾸지 마세요. |
| 피렌체 넷째날 | 산타 크로체, 단테의 무덤만 비어 있는 성당 (약 5시간) | 바르젤로와 산타 크로체 두 곳의 관람만 세 시간이 넘어 오전 코스 하나로 하루가 찹니다. 오후는 비워 두었다가 해 질 무렵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올라가시는 편을 권합니다. |
다만 위 표에서 약 4시간을 넘는 코스 4개는 내부 관람이 많아 그 자체로 하루의 대부분을 씁니다. 이 코스가 낀 날은 나머지 반나절을 비워두거나, 관람 시간이 긴 지점 한두 곳을 빼고 걷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마무리
피렌체에서 일정을 잡아먹는 것은 걷는 거리가 아니라 예약입니다. 아카데미아·우피치·두오모 돔 세 곳은 시간 지정 예약제라, 이 세 개의 시각을 먼저 못 박고 나머지 코스를 그 사이에 끼워 넣는 순서로 짜야 일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시뇨리아 광장의 로지아나 베키오궁 안뜰, 스트로치 궁 안뜰처럼 표 없이 들어가는 곳도 적지 않으니, 예약이 안 잡힌 시간대는 그런 곳으로 채우시면 됩니다. 마지막 날 해 질 무렵에는 코스 밖이지만 아르노강 남쪽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올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지금까지 걸은 일곱 구역이 한 화면에 들어옵니다.